질병은 범죄가 아니다!
19조 폐지하라!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예방법에는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제19조)이 있습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전파를 매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벌칙으로 “3년 이하의 징역”(제25조)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법은 “전파매개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며, 과잉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어 HIV감염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 합니다.
가장 확실한 예방수단 "치료"
그동안의 의학적 발전에 힘입어, 현재 HIV 바이러스는 하루 한 알의 치료제를 매일 복용하는 것으로 완전 억제가 가능합니다. 정상적인 면역기능을 유지하므로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진행도 막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바이러스가 억제된 감염인은 타인에게 HIV를 전파할 가능성도 사라집니다. HIV의 주요 전파경로는 밀접한 성접촉이지만, 감염인이 지속적으로 치료받고 있다면 콘돔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파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는 가장 확실한 예방수단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을 규율하고 징벌하는 수단으로 작용
그러나 1980년대에 마련된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은 이러한 과학적 진보를 알지 못합니다. 법이 알고 있는 유일한 예방조치는 “콘돔”이고, 법원은 “HIV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행위”에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조항이 “전파를 매개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탓에, 파트너의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합니다. HIV감염인이 치료에 꾸준히 참여하여 바이러스 억제 상태를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더라도 처벌합니다. 상대방에게 HIV 감염 사실을 미리 알리고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임에도 처벌합니다.
이러한 자의적 법 적용은 2008년 에이즈예방법의 개정 취지에도 어긋난 것입니다. 당시 제19조는 전파매개행위로 “감염의 예방조치 없는 성행위”를 포함하였는데, 이 부분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인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으로 비판받아 삭제하였습니다. 성행위에서 콘돔 사용 여부를 국가가 감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19조는 감염인의 성행위를 범죄화하지 않도록,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만 규제하는 것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포괄적인 표현 탓에, 법 개정 취지는 실종되고 감염인의 성생활을 규율하고 징벌하는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헌법적인 권리를 박탈 당한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은 개인들 간 갈등의 처리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염인은 혐의자가 됩니다. 성생활이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 되면서 헌법적 권리인 사생활의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치료를 통한 바이러스 억제로 예방을 달성하고 있더라도, 일단 감염인이 된 이상 평생 법의 규율대상으로 남게 됩니다. 이런 과도한 조치는 모든 질병 중 HIV에만 존재합니다. 감염병예방법에도,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전파매개행위” 또는 “전파행위”를 처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로지 행정처분 및 의무 위반에 대한 벌칙이 있을 뿐입니다.
예방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법은 이제 안녕히
사실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은 예방에 기여하지도 못합니다. 국내 대다수의 감염인이 치료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HIV 전파는 아직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감염인인 줄 미처 몰랐다면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결국 법은 전파가능성이 없는 행위를 규율하면서 HIV감염인에 대한 편견만을 드러냅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비감염인의 HIV 검사와 감염인의 치료 접근성 확보입니다. 혹여 고의적 전파가 발생하더라도 형법의 상해죄를 적용할 수 있기에 과잉입법에 해당합니다.
시민들 사이에 두려움의 문화를, 감염인들에게 죄책감과 자기혐오를 가져오는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조항은 과학적,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로 지속되는 제도적 차별에 불과합니다. HIV감염인을 국가가 범죄화한다면 인식개선이나 차별 해소를 말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존중을 원합니다.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 이제 우울했던 과거의 단편으로 떠나보낼 때입니다.